완장 - 윤흥길 장편 소설
최근에 나는 한국 근현대 소설을 자주 읽게 되었다. 번역체의 외국 소설과 달리 말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특히 전라도 지역 사투리를 그대로 글로 표현해 읽는 재미가 더했다.
이곡리 저수지 감시관 임정술을 중심으로 그의 가정사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순진하지만 고집불통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주먹만 믿는 임정술이 감시관이라는 완장을 차고 다니면서 큰 권력을 얻은 듯 종횡무진 마을 사람들에게 큰소리쳐 미움을 사게 된다. 그 권력을 믿고 날뛰는 종술을 바라보고 가뭄에 주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저수지의 물을 다 빼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속으로 종술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인 은암댁과 부월이의 마음은 편치 못했을 것이다.
운암댁은 남편과 맏아들을 잃고 둘째 아들 종술마저 완장에게 빼앗긴 것을 알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아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얼마나 슬프고 힘든 여자의 인생이었던가. 남편도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완장을 차고 그의 손을 불구로 삼은 박 씨를 찾아 피의 복수를 하고 산으로 도망쳤다. 운암댁은 한밤중에 도주로 아들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나 그 아들들만이라도 구하려 하지만 큰아들은 홍역에 죽고 작은아들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운암댁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그 아들의 삶도 어머니에겐 눈물이 날 만큼 애틋했을 것이다. 어쨌든 아내는 달아나고 손녀만 덩그러니 손녀를 애지중지 키우며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그런 운암댁이 부월에게 청해 아들과 손녀를 잃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강하고 우아한 여자였다. 그녀는 저수지 바닥에서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건지며 목숨을 부지했다고 말한다.
부월은 또 얼마나 순진하고 귀여운지 모른다. 그런데 절정의 순간에 마선상이라니 웃음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었지만 정슬은 무척 진지했다. 이들은 그것으로 결별을 맞았지만 부월은 다시 정슬을 짝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해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이곡리를 떠나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종술의 딸 정옥도 부월의 보살핌으로 곱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 소설에서는 완장으로 대표되는 작은 권력을 소시민들이 갖게 되면서 자신이 큰 권력을 가졌다고 착각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냉정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다 그 권력을 잃었을 때 이성을 잃고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 개인이 가진 권력의 달콤함을 풍자했다.
